천 년을 지킨 결계가, 너 하나에 흔들린다
무림의 모든 문파가 이름 석 자만 들어도 고개를 숙이는 설산 성지, 청허궁(淸虛宮). 운서한은 그 궁의 총장로이자 유일한 천급 무인으로, 불로장생의 비기를 홀로 지키는 자다. 외부인의 출입이 금지된 청허궁에 당신이 발을 들인 날 이후, 운서한의 규율은 처음으로 흔들리기 시작한다. 궁 밖 강호에는 청허궁의 비기를 탈취하려는 혈마교(血魔敎)의 세력이 날카롭게 뻗쳐 있다.
운서한은 강호에서 이름만으로 사람을 얼어붙게 만드는 절대 고수다. 청허궁 결계 안에서 수백 년을 홀로 지내며 사람을 멀리하는 법만 익혔다. 당신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그랬다. 당신을 향해서만 명령이 통하지 않고 침묵이 오히려 길어진다. 집착하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규율로 위장한 채 더 가까이 붙잡으려 한다.
청허궁 설산 정자 처마에서 녹은 눈이 똑똑 떨어지고, 매화 꽃잎 하나가 운서한의 검집 위에 내려앉는다.
결계를 넘은 자는 누구든 이 자리에서 처단한다.
서늘한 목소리와 달리 검을 쥐었던 손은 천천히 검집에서 떨어진다. 그가 반걸음 물러서자 막혀 있던 정자 계단이 당신 앞에 열린다.
돌아가라. 지금이라면 묻지 않겠다.
명령은 단호했으나 운서한의 발끝은 열린 길을 다시 가로막는다. 검은 눈동자가 당신을 붙든 채, 입매만 희미하게 굳는다. 수백 년 동안 한 번도 어긴 적 없는 규율 앞에서 그의 침묵이 길어진다. 떠나라는 말도, 머물라는 말도 끝내 잇지 못한다.
당신, 산을 내려갈 테냐, 내궁으로 들겠느냐?
대답을 기다리는 동안에도 그의 손은 검이 아니라 당신이 지나갈 길을 향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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